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읽고 있는 책

벙어리새 : 어느 의용군 군의관의 늦은 이야기

벙어리새
류춘도 저
한국 전쟁 당시 여성의 몸으로 의용군으로서 인민군 부상병들을 돌보며 함께 생활했던 이야기를 비롯한 저자의 평생의 삶과 격동의 시기를 겪은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담담히 서술한 책이다. 이이화 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저자의 고단한 삶에 연민을 보내기 보다는 물씬 풍기는 휴머니티를 실감할 수 있고 특히 진솔한 현대사의 증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. 이처럼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전쟁이라는 극한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담담하게 들려준다.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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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덧 그들의 한이 나 자신의 한이 되었다. 파아골의 계곡물을 피로 물들인 어린 연락병이 나였고, 남강물에 떠도는 젊은 지휘관의 시체가, 화염 속으로 뛰어 들어간 지프차안의 소년병이 바로 나였다.
긴 세월 습관처럼 되어버린 나의 이러한 의식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. 전쟁의 수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유린했듯이 나의 영혼 또한 온전할 수 있겠는가.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. 나의 기억 속의 그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며, 그들이 내 마음속에 살아 있고자 하기 때문이다.

나는 전쟁 때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숱하게 넘나들었다. 전쟁이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파괴하며 강자가 약자를 어디까지 철저하게 짓밟았는가도 보았다. 나는 이와 같은 전쟁의 부조리에 분노했고 망가져 가는 영혼에 통곡했다. 지난 세월은 참으로 길었다. 그 기나긴 세월 속에서 눈 질끈 감고 보통사람이 되기에는 전쟁의 상처가 너무 컸다..
( 머리말에서....)